[사람]핑크빛 스웨터를 입은 소녀
올가을은 예년과는 다르게 참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고...
그래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다고 스스로 참 좋아했다.
늘 10월은 쓸쓸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따뜻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메야 했다.
시린 발을 참지 못해 잠자리에 들때면 꼭 양말을 찾아 신는것 처럼...
어제 문득 아침일찍 친구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하다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다가...내게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어느순간은 엄마의 품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생각하게 했던
어떤이의 따뜻한 스웨터가 생각났다. 아주 뜬금없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앨범을 찾아본다.
같은 반은 아니었다. 몇반이었더라... 시간이 없네...
다녀와서 찾아봐야지... 그래야지... ...
... ...
15살. 중학교 2학년.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나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받아만 들였던 그때
여러가지로 아주 힘든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 그자체였다.
가정적으로도 불안했고 친구관계도 힘들었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고
모든것이 정상적이지 않았던것 같은 시기였다.
나는 너무 우울하고 독기에 가득 차 있었으며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실망으로 가득차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이미 너무 늙어버린 아이였다.
그때의 나의 즐거움은 김영숙, 황미나, 김진,오경아,김혜린,강경옥의 만화를 보는것...
이제 막 재미를 들인 김홍신의 '인간 시장'의 다음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것... 밤새워 사촌언니와 이야기하는것...
세째형부가 주신 자전거를 타고 어디로던 달리는것...
엄마가 와서 더 오래 머무르는것 ...
올케언니가 도시락 반찬을 해다주는것...
연탄불이 꺼지지 않는것...
학교의 준비물을 제때 챙겨가는것...
시험기간에 아버지가 취하지 않는것... .... .... ....
오늘 그아이를 찾아냈다. 이름이 김미정이었다.
앨범을 두번째 뒤적이고야 찾을수 있었다. 생소한 얼굴이다.
순간 기억이란 참 왜곡이 심하구나 생각한다.
어쩌면 정지된 사진으로 그것도 증명사진으로 기억속의 사람을 느끼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3학년 우리반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도 너무 낯선이들이 많았던걸 보면 말이다.
중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그아이...
평소... 같이 어울려 다니던 아이는 아니었다.
얼굴이 하얀편이고 피리를 아주 잘 불었던걸루 기억한다.
기독교 재단 학교여서 월요일마다 예배시간이 따로 있어 강당에 모였었는데 무슨 행사때 그아이가 나와서 피리독주회를 했다.
연주한 노래가 뭐였는지는 기억안난다. 아주 잘 불었던게 분명하지만.
어느날... 이맘때쯤이었을까... 점심시간이었던가... 쉬는 시간이었던가...
평소 같이 어울려 다니던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 다투었던것 같다.
난 혼자고 그아이들은 세명. 무슨일로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울었던가... 그랬던것 같다.
그때 그아이가 중재를 해주었고 나를 달래줬다.
정확이는 안아주었다. 그때에 느껴지던 그아이가 입은 앙고라 스웨터의 따뜻한 느낌...
얼굴을 간지럽히던 부드런운 털의 느낌과 함께 느껴지던 좋은 냄새..
그게 섬유 유연제의 냄새였던 나의 착각의 냄새였던 어쨌던
나는 그걸 엄마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열 다섯살의 여자아이가 같은 열다섯살 여자아이 품에서 엄마의 냄새를 느끼다니.... 나는 참 외로운 아이였던거다.
같이 어울리던 아이들과도 맘을 나누었다기 보다 그저 소속 될 무리가 필요했던것 같고... 엄마도 함께 살지 않았고... 그 많은 언니 오빠들도 나를 돌봐주지 않았으니까 ... 이세상에 내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던 그런 때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그후로 그아이와 친해졌나? 아니다 . 각자의 생활을 했을거다.
그 일후로 그아이와 이야기를 하거나했던 기억이 없다.
따뜻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스스로가 너무나 밝은 빛을 가지고 있어 다른사람까지도 따뜻하게 만들어 줄수있는 그런 사람을...
그아이처럼 따뜻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또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맘을 다친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그래서 잠시라도 위로가 되어 줄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 속의 찬기운을 몰아내고 상처을 어루만져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지나온 시간을 어찌 되돌릴수 있을 것이며 지난 기억을 지우기란 어제의 일을 잊어버리기 보다 더 힘이 든다.
내게 앙고라털실의 따뜻함을...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그 아인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