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프렌치(Thomas French)지음
이진선.박경선 옮김
읽은 날: 2011년 10월의 첫날
참으로 사실적이면서 은유적인 동물원이야기 너무 흥미있고 재미있게 또 슬프게 읽었다.
울아들에게도 나중에 꼭 읽어보라고 했을정도!!
부제가 이책을 가장 잘 표현한것 같다. 우아하고도 쓸쓸한 도시의 정원!!
로우리 파크의 왕과 왕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데
나는 침팬지'허먼'에 대해 읽으며 지난달에 본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의 시저가 생각나는지~
같은 영장류이면서 유전자의 80프로 이상이 같다는데 그래서인지
인간의 관점에서 봐도 너무나 매력적인 존재였다.
혹시 그 영화의 모델이 허먼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로우리 파크 왕에 관한 이야기 p124~143 요약내용]
1966년 12월 라이베리아, 서아프리카 항구 뷰캐넌에 위치한 철광석 채굴회사에 근무하던 미국인 에드 슐츠는 누군가가 직원식당에서 아기 침팬지를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슐츠는 야생동물 고기 거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나무 위에 있던 어른 침팬지를 쏘아 맞혀 고기는 식용으로 팔고 새끼는 애완용으로 팔았다. 어미 침팬지는 새끼를 안고 있어 나무 사이로 재빨리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냥하기가 더 쉬웠다. 이러한 사냥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피해는 점점 심해졌다. 애완 침팬지 한 마리를 얻기 위해 다른 많은 침팬지들이 학살됐다.
슐츠와 그의 가족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동물들의 학살에 대해 슬퍼할 줄 아는 가슴을 갖고 있었다. 그는 침팬지 판매책과 접촉, 자신이 생후 몇 주밖에 안 된 침팬지 두 마리를 거두기로 했다. 가족으로서. 그는 수컷 새끼를 안으면서 말을 했다. "네가 우리 허먼이구나." 암컷에겐 지타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녀석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아내 엘리자베스와 자녀 로저와 샌디는 침팬지 새끼들을 반겼다.
허먼은 의젓했다. 지타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잡고 흔들어도 참아냈다. 슐츠 가족은 이들을 가족으로서 대했다. 허먼에게 식탁에 앉는 법과 컵을 사용하는 법, 그리고 얌전히 과일을 먹는 법을 가르쳤다. 허먼에게 아이들이 입던 옷을 입히고, 발바닥을 간질였으며, 목말을 태우고 수영장에도 데려갔다. 허먼이 들판에서 놀고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도록 해주었다.
슐츠가 라이베리아에 있을 때 근무했던 다국적 기업 LAMCO는 다수의 스웨덴 출신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고용했다. 허먼은 회사 야유회 때면 늘 스웨덴 여성들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때부터 허먼은 금발 미녀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회사 행사에 참석한 스웨덴 여성 대부분은 금발이었다. 슐츠의 부인도 금발이었고 집에 왔던 스웨덴 아가씨들도 금발이었다. 만약 허먼이 어미를 사냥꾼들에게 잃지 않고 야생에서 살았다면, 허먼은 유년기의 대부분을 엄마 품에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허먼은 엄마 품 대신 아낌없는 관심을 보이는 금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다.
슐츠 가족은 허먼이 지타와 짝은 맺기를 바랐다. 허나 허먼은 시간이 지나도 지타에게 이성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먼의 사회성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가 지타나 다른 암컷 침팬지들과도 사이좋게 지냈으니 말이다. 문제는 허먼의 리비도가 같은 침팬지를 향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슐츠 가족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그들은 간절하게 생존을 향한 손을 내밀던 어린 허먼의 손을 잡아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먼은 서커스단으로 팔려갔을 수도 있고, 가축으로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가 고깃덩이로 팔렸을 수도 있으며, 이것도 아니라면 제약회사의 생체실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슐츠 가족은 허먼의 목숨을 구한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일 년 후 슐츠는 미국에 새 일자리를 얻어 가족과 함께 오하이오주로 이사했다. 허먼과 지타도 데려갔다. 미국으로 돌아온 바로 그해 크리스마스에 슐츠 가족은 허먼에게 겨울 아동복을 잔뜩 입혀 눈 내리는 집 앞 뜰에서 놀게 했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사자 모양으로 만든 눈사람이 서있고, 방울 달린 니트보닛을 터질 듯 쓰고 있는 허먼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얼어붙은 겨울 풍경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슐츠는 탬파에 있는 비료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돼 가족과 함께 탬파로 이사했다. 다섯 살이 다된 허먼과 지타는 사춘기에 막 접어들고 있어서 슐츠 가족이 만들어준 커다란 우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허먼과 지타는 점점 힘이 세졌고 갈수록 통제하기가 힘들어져서, 엘리자베스 슐츠와 그녀의 딸은 혼자서는 더 이상 둘을 집안으로 데려올 수 없었다. 이제 허먼과 지타는 더 이상 슐츠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다 자란 침팬지는 대단히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 다 자란 침팬지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몸집이 더 크고 사람보다 힘이 훨씬 세다. 침팬지는 자기와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언제 사납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마음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곧바로 반응한다. 다 자란 침팬지가 놀라울 만큼 잔인하게 사람을 때리거나 사람 손가락을 물어 끊고 눈을 잡아 뜯는 일이 예전부터 종종 있어왔다.
2009년 코네티컷 스탬퍼드에서는 사람처럼 길러진 애완 침팬지가 식탁 서랍에서 주인의 열쇠를 꺼내 밖으로 빠져나간 사건이 일어났다. 주인이 친구에게 집나간 침팬지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있을 때, 몸무게가 90kg이나 되는 애완 침팬지가 집 앞에 있던 친구를 공격했고, 주인이 식칼로 침팬지의 등을 찔렀는데도 친구를 놓아주지 않았다.
"침팬지가 내 친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어요!" 주인은 911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아마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어미에 품에 안겨있을 때 사냥꾼에게 어미를 잃었을 그 녀석은,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생명의 동아줄을 내려주길 바라고 있었을 그 녀석은, 운 좋게 인자한 주인을 만나 와인잔을 사용할 줄 알고 스스로 옷을 입거나 목욕을 하며 컴퓨터까지 사용할 줄 알게 된 그 녀석은 결국 주인에 의해 불린 경찰에 의해 사살이 됐다. 그리고 그 주인의 절친했던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가 실명했고, 손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코가 떨어져 나가고 얼굴의 대부분이 찢겨지는 참사를 당했다.
에드 슐츠는 사랑스러운 허먼과 지타가 자기 가족을 공격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1971년, 슐츠는 허먼과 지타를 로우리 파크에 기증하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요구하면서. 첫째는 허먼과 지타를 다른 시설에 팔거나 연구실에 보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로우리 파크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허먼의 머리에 전극을 꽂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슐츠의 아들 로저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둘째는 요행히 허먼과 지타가 짝짓는다면, 단 몇 년 만이라도 둘 사이에서 낳은 새끼에 대한 양육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동물원으로 보내는 날 아침, 슐츠 가족은 시청을 공식방문하기 위해 침팬지들을 차에 태워 탬파 시내로 갔다. '탬파 트리뷴'의 사진 기자는 딕 그레코 시장이 과장된 몸짓으로 허먼과 지타를 맞이하는 사진을 찍었다. 기자가 찍은 사진 중에는 허먼과 지타가 그레코 시장 옆에서 시 예산을 놓고 골똘히 생각하는 장면도 있었다. 슐츠 가족은 경박한 쇼라 여겼다. 그러나 허먼이 즐기는 것으로 보였기에 안심이 됐다. 사실 허먼은 슐츠 가족과 함께 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법을 재빨리 익힌 것이었지만. 로우리 파크의 새로운 스타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슐츠 가족과의 이별이 허먼과 지타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그는 침팬지이기 때문이다. 허먼은 왜 자기와 지타가 버림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문이 닫혔다. 자물쇠가 채워졌다. 슐츠 가족은 떠났다. 허먼은 예전에 집에서 가족들이 그를 우리에 남겨놓았을 때처럼 그들의 등에 대고 큰 소리로 불렀다. 허먼은 언젠가는 자신의 가족들이 자신을 데려올 거라 믿었을까?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까?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세 번째 삶이 시작됐다. 짧았던 어미의 품, 슐츠 가족의 품, 그리고 로우리 파크의 품. 숲에서의 삶, 물가로 놀러가거나 가족들과 저녁 식탁에 한데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인간의 삶, 철창 안에서 지나다니는 이방인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삶.
그가 로우리 파크에서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은 이렇다. 우리 안으로 면도칼이 날아들었고, 화살이 날아와 사료에 박혔다. 물개들은 관람객이 수조에 던지 동전을 먹고 구리 중독으로 쓰러졌다. 뱅골호랑이 두 마리는 누군가가 암페타민(각성제, 식욕 감퇴제)과 바르비투르산염(진정제, 최면제)을 먹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 호랑이는 로우리 파크에 온지 이틀 만에 아이들이 던진 타이레놀 알약을 삼켜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탬파 시장이었던 딕 그레코는 동물원 측에서 시장 집무실에 걸어 놓은 호랑이 가죽이 필요하냐고 물어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하지 않았답니다." 오늘날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동물원 사자를 훔쳐 암시장에 300달러를 받고 팔아넘기려던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부보안관이 도둑을 추적해 도버 인근에 있는 이동식 주택촌에 있는 것을 알아냈고 사자를 구출할 수 있었다.
허먼은 주변에 있던 동물들이 죽어갈 때,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예쁨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생명은 그날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리라. 시시덕거리기, 손으로 키스 보내기, 손뼉 치기, 춤추기, 공중제비 넘기 등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재주를 익혀나갔다. 사람들이 피던 담배를 허먼에게 던져주면 허먼은 담배를 받아 피웠다. 때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른 침팬지들은 지루하거나 기분이 상하면 자신의 배설물을 던지곤 했지만, 허먼은 기저귀를 차고 자란 터라 자기 용변에 결벽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눈 배설물을 절대 만지려 들지 않았다. 대신 흙을 집어 던졌다.
광대짓을 잘하는 허먼은 동물원의 명물로 거듭났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허먼의 우리 앞에 발길을 멈추고는 허먼의 반응을 끌어내려고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 앞에서 겅중거리며 익살을 부리는 허먼을 뒤에서 지켜보던 사육사들은 허먼의 이런 들뜬 과시 아래 절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허먼은 그저 단순히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하나뿐인 생물종과 가까워지기 위해 매일매일 몇 년을 몇 십 년을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987년,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로부터 칭송을 받을 정도로.
지타가 바이러스에 걸려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먼은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하게 됐다. 동물원은 다른 침팬지들을 새로 들여왔다. 야생에 살았던 새끼 때 이후 처음으로, 허먼은 침팬지 사회의 일원이 되어 동료들의 습성과 생체 리듬을 배웠고 집단의 우루머리로서 자신의 방식을 관철하는 법을 터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 체스터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너무도 손쉽게 왕좌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허먼이 보통 우두머리와 달랐기 때문이다. 체스터가 주먹으로 치고 물어뜯으며 단 한 차례 공격했는데도 허먼은 바로 항복해버리고 만 것이다.
허먼은 잃어버린 권좌를 되찾으려 들지 않았다. 인간의 손에 자라난 허먼은 지나치게 점잖았다. 한 번도 싸워본 경험이 없어서 침팬지 사회의 폭력으로 점철된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야생에 있든 갇혀 있든, 권력을 잡으려는 수컷 침팬지들은 공격적으로 싸운다. 때로는 잔인하게 서로를 죽일 정도로. 약한 녀석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다. 암컷에게도. 체스터는 권력을 잡고 나서도 허먼과 다른 침팬지들을 계속 쫓아다니며 괴롭혔고 매일 손찌검을 해댔다. 영장류 사육사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방식이라 여기며 개입하려들지 않았다.
신참 사육사였던 리 앤 로트먼은 당시 허먼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기억한다. 단순히 지배자의 자리를 빼앗겨서가 아니었다. 허먼은 자기 자신과 다른 침팬지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젊은 수컷 체스터가 암컷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힘이 없어진 허먼은 혼란스러워했다. 허먼은 이를 드러내고 히죽거리며 초조히 전시관을 왔다 갔다 했다. 침팬지들이 두려울 때 하는 행동이었다.
때로 체스터가 허먼이나 다른 침팬지를 추격하면 허먼은 근처에 있던 사육사를 향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침팬지보다 사람에게 훨씬 더 동질감을 느끼는 허먼에게 이 애처로운 몸짓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허먼은 사육사들이 왜 개입하기를 꺼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십 년 넘게 동물원에서 지낸 허먼이 아는 것이라고는 사람이 자기의 친구라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허먼은 사람들이 당연히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자신이 다른 침팬지들을 보호할 수 있게 사람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체스터는 잘못했을까? 아니다. 녀석의 행동은 우두머리 수컷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사육사들의 입장에서 체스터가 허먼을 비롯한 다른 침팬지를 공격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체스터는 우리 바깥으로 탈출을 했다가 사육사들이 오면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관람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골칫거리가 됐다. 일 년 후, 체스터는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졌고, 허먼은 다시 서열 1위를 회복했다. 허먼은 약한 침팬지를 스스로 품에 안아 보호해줄 정도로 마음이 넓었다. 1998년, 아기 침팬지 알렉스가 로우리 파크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이 녀석이 수줍어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허먼은 알렉스의 곁을 지켰다. 암컷조차 때리고 놀리는 늙은 수컷 뱀부가 들어왔을 때 허먼은 다른 침팬지들보다 가장 먼저 그를 받아들였다. 더 이상 암컷 침팬지들은 서열 1위의 수컷에 의해 강간을 당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침팬지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의 평화가 다시금 찾아왔다.
언제나 허먼은 달랐다. 새로운 사육사가 들어오면, 허먼은 철조망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어 환영했다. 이 행동은 침팬지 언어로 신입 사육사가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지 않을 것을 믿는다는 신뢰의 표현이었다. 허먼은 자신이 신입 교육 사육사들을 믿는다는 사실을 신입 사육사들이 알아주고 믿어주기를 바랐다.
허먼은 영장류 담당 부서 직원 중 리 앤을 좋아했다. 리 앤의 머리색은 밝은 갈색과 금발의 중간이었다. 허먼은 리 앤을 비롯한 여성 영장류 관리직원들을 자기소유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리 앤의 아버지가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 딸의 어깨에 손을 올렸더니 허먼은 소리를 지르고 전시관 벽에 자기 몸을 부딪히며 분노를 표출했다. 침팬지 암컷들에게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 허먼이 말이다.
허먼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사람 같을 때가 있었다. 머피 박사와의 관계가 좋은 예다. 로우리 파크에 있는 많은 돌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침팬지들은 수의사 머피를 싫어했다. 수의사를 보면 진정제 맞을 때의 따끔거림과 의료행위를 할 때 일어나는 모욕적인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날, 머피는 허먼을 진찰하기 위해 진정제 주사를 놓으러 숙소에 방문했다. 머피는 조준을 잘해서 실수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날은 주사가 빗나가고 말았다. 다른 침팬지 같았으면 도망가서 숨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먼은 진정제 화살을 집어 들더니 철조망 쪽으로 걸어와 머피에게 다시 쏘라고 갖다 주었다.
해질 무렵 사육사들이 허먼을 숙소로 되돌아가게 할 때, 사육사들은 허먼이 좋아하는 금발 여자 직원에게 부탁해 숙소 출입구 옆에 서서 허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그러면 허먼은 희망에 부풀어 그녀를 향해 네 발로 뛰어온다. 로우리 파크에서 보낸 허먼은 너무 나이가 든 왕이다. 조만간 그와는 다른 수컷에 의해 왕좌를 내줄. 그들은 허먼의 시대를 존중할까? 침팬지가?
그는 부드러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손톱 손질을 하고 나면 기분 좋아했다.
그는 탱크돕을 입은 미녀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싸움이 있은 뒤에는 늘 화해를 했다.
그는 굉장히 화가 나 있을 때도 언제나 경고를 먼저 했고, 교활하게 구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줄 아는 눈이 있었다.
[ 로우리파크의 여왕 엔샬라에 관한 것]
인간의 보살핌 아래 태어나고 자랐지만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다.
여왕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언제나 기억했지만, 그녀 역시 기억의 대가를 치를 것이었다.
엔샬라의 삶은 휠씬 더 우아했다. 그녀의 모든 것은 깨끗하고 깔끔했으며 완전한 순수로 가득했다. 허먼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전혀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다. 엔샬라는 재주를 부리지 않았고, 순응하거나 타협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철저히 호랑이였고 두터운 말갈비살 한 조각을 주려고
다가오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다.
매일 엔샬라와 함께 생활하는 사육사들에게, 그녀의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움은 그녀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
엔샬라는 강인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강인한 암컷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더치'와 '투카'라는 이름의 수마트라호랑이로, 각자 로체르담과 샌디에이고에 있는 동물원에서 로우리 파크로 옮겨졌다.더치의 때 이른 구애는 후에 엔샬라와 에릭 사이에서 펼쳐지는 역학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딸 엔샬라처럼 투카는 사람들이 데려다놓은 수컷 구혼자보다 더 자신감이 넘쳤다. 엔샬라와 마찬가지로 투카도 더치보다 로우리 파크에 먼저 살기 시작했고 호랑이 전시관은 그녀가 통치하는 왕국이었다.더치가 몸집이 더 컸지만, 투카는 더치를 처음 보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제압했고 더치는 투카의 진노에 풀이 죽어 버렸다.
마침내 투카는 누그러졌고 짝짓기를 할 정도로 더치와 가까워졌다.그렇다고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호랑이들 간에는 치명 적인 폭력이 비일비재했다.야생에서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히 지키는 고독한 동물이지만, 수컷 두 마리가 서로 지나치다 싸움이 붙으며 최소한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난다.그리고 암컷이 발정기가 아니면 암컷과 수컷이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교미를 위해 만난 수컷이 암컷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실수로 그렇든 아니면 다른 위협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든 암컷이 자기가 낳은 새끼를 죽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더치와 투카도 첫 번째 새끼 셔 칸을 199ㅇ년 봄에 사고로 잃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셔 칸은 전시관 앞쪽에 있는 웅덩이 근처에 앉아 있다가 투정부리듯 낮게 그르렁거리며 어미를 불렀다고 한다. 투카는 새끼에게 가서 뒷덜미 대신 목을 집어 들었다.어미는 새발버둥 치다 끝내 질식사하고 말았다. 새끼가 잠잠해지자 투카는 전시관 앞쪽 물가에 시체를 내려 놓았다. 사람들이 흐느끼며 쳐다보자 투카는 새끼를 살려보려는 둣 축 처진 새끼를 물에 담갔다 꺼냈다.사육사들이 숙소 안에 있는 우리로 들어가라고 투카를 달래자, 투카는 셔 칸의 사체를 전시관에 두고 들어갔다. 수의사가 전시관 안으로 뛰어 들어와 새끼를 데려갔고 직원들이 심페소생술과 구강인공호흡을 한 시간이나 실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6개월 후, 더치와 투카는 케실이라는 암컷 새끼를 또 한 마리 낳았다. 그러고 나서 1991년 8월 24일, 투카는 세 마리의 새끼-리쟈,사샤,엔샬라-를 더 낳았다. 태어나서 처음 몇 달 동안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치는 격리시켰다.새끼들이 태어난 지 8주가 되자, 투카를 담당하는 사육사들은 엔샬라를 잠시 어미로부터 떼어놓기로 결정했다. 엔샬라는 귀 뒤에 상처가 났는데 투카가 상처를 끊임없이 햝으며 과잉보호를 했기 때문이었다. 엔샬라의 상처를 낫게 하려고 몇 주 동안 낮에는 사육사들이 직접 보살피고 밤에는 어미가 있는 우리로 데려다 놓기로 한 것이다.
당시 부총괄 큐레이터였던 제드 캐딕은 남부 탬파에 있는 자기 집나무 바닥을 터벅터벅 겅어 다니던 어린 엔샬라를 기억했다. 엔샬라는 부엌에 있는 애완동물 캐리어 안에서 잠을 잤고, 캐딕이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는 이유식과 고기 분말을 섞은 묽은 죽을 받아먹었다. 캐딕은 엔샬라의 털ㅇ에 자기 냄새를 배지 않게 하려고 먹을 것을 줄 때 장갑을 끼고 먹였다. 그는 어미 호랑이처럼 엔샬라의 뒷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그러나 엔샬라는 이렇게 몸이 축 처진 상태에서도 유순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의 품에 안기거나 응석을 부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엔샬라는 사납지는 않았지만, 사람과 친구ㅡ가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어요.그래도 정말 귀여웠죠.그때가 제일 귀여웠던 때였어요."
캐딕이 말했다.
아기 호랑이를 안는 것은 집고양이를 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다 자란 고양이는 새끼 호랑이처럼 몸통이 두껍거나 근육질이 아니라서 품에 가볍게 안을 수 있다. 새끼 호랑이는 장난칠 때도 자기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래서 어떤 해를 입힐 수 있는지 안중에도 없아. 만약 당신이 아기 호랑이를 안고 있으면, 당신 품에 코를 비벼대고 있는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나중에 커서 당신을 잡아먹으러 뒤쫓아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상스러운 털복숭이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미래의 무시무시한 포식자를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은 스릴이 넘친다.
엔샬라는 곧 투카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해11월, 엔샬라와 투카는 전시관에 정식으로 공개될 예정이었다.
새끼들은 금세 동물원의 명물로 떠올랐지만, 이들은 곧 따로 떨어져 살게 될 운명이었다.한 살이 되면 모두 다른 동물원으로 봬질 터였다. 누이 켄실도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로우리 파크의 호랑이 전시관와 숙소는 다 자란 새끼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엔샬라와 라쟈는 플로리다 팬핸들 지역의 주 월드로 임대되었다. 엔샬라가 파나마시티 동물원에 보내질 무렵, 엔샬라는 더 이상 어린 새끼가 아니었다. 아직 덜 성숙하긴 했지만 벌써부터 불같은 성미를 내보이며 사춘기를 맞고 있었다.
엔샬라의 남동생 라야는 주 월드에 하루도 채 있지 못했다. 엔샬라와 라야가 주 월드에 도착했을 때,둘은 탬파에서 맞은 진정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사육사들이 우리에 데려다 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약기운이 완전히 가셨다. 다음 날 아침, 직원이 이들을 살펴보러 들렀는데 라야가 목 뒤에 상처를 입고 죽어 있었다.
처음에는 라야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에는 라야 혼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검 결과 옆 우리에 있던 어른 수컷 사자가 치명상을 입힌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이 일어났던 밤, 사자는 우리 사이에 닫혀 있던 드롭게이트-'단두대 문'이라고 불렀다-를 밀어올리고는 아직 반쯤 깨어 있던 라야를 공격했다. 다른 우리에 있던 엔샬라는 무사했다. 불과 몇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지만, 남동생 라야가 사자에게 물린 채 질질 끌려가는 광경을 엔샬라가 목격하거나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의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이제 엔샬라는 혼자였다.
갑작스런 죽음은 엔샬라 주위에서 계속해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셔 칸이, 이번에는 라야가 목숭을 잃었다. 그리고 1997년 어느 봄날, 엔샬라의 아비 더치는 엔샬라의 어미를 죽였다. 더치와 투카는 새끼들이 다른 동물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 단둘이 로우리 파크에 있었다. 처음 구애하던 시절에는 서로 다툼이 많았지만, 둘이 같이 지낸 지 5년이 되었고 사육사들이 정기적으로 둘을 짝지어 줄정도로 더치와 투카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오 무렵, 전시관에 있던 둘 사이에 싸움이 시작됐다.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더치가 투카의 숨통을 끊어놓았던 것이다. 부검을 실시했던 머피 박사는 왜 둘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며칠 뒤, 더치는 야간 숙소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모며 우리를 돌아다녔다. 투카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더치는 루이스빌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투카가 죽고 더치가 떠나자 로우리 파크의 호랑이 전시관은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해 말 엔샬라를 파나마시티 동물원에서 다시 데리왔다. 당시 막 세 살이 되어 다 자란 처녀였던 엔샬라는 로우리 파크를 떠날 때보다 힘도 더 세지고 고집도 더 세졌다.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돌아오자,그녀는 자신의 영토를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후 9년 동안, 수컷 수마트라호랑이들이 엔샬라의 윤허를 받으러 전시관을 교대로 들락거렸다. 그때마다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지 분명히 드러났다. 사육사들은 호랑이든 인간이든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엔샬라에게 감탄했다.
사육사들이 식사시간에 우리에 고기를 넣어주면 엔샬라는 으르렁거리며 사육사를 내보낸 후 혼자서 편안히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엔샬라의 굽힐 줄 모르는 태도는 그녀의 종족이 맞이할 미래에 위협이 되고 있었다.페미니즘은 도덕이나 윤리,그리고 앞서 호랑이에게 두부를 먹이고 싶어 했던 남자가 지지하던 채식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자연은 이런 관념들에 관심이 없다. 자연은 진보,정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인간의 개념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엔샬라라가 새끼를 가지게 하려면 빠른 시일 안에 임신을 시켜야 했다. 엔샬라는 이제 열세 살이었고 가임 연령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녀가 에릭을 거부한다면 앞으로 구혼자를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그녀의 종족처럼,그녀에게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2006년 초여름 , 인간에 대한 끝임없는 관심와 욕망을 가졌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우아함과 관용을 베풀줄 알았던 허먼이
로우리 파크에 온지 35년만에 왕좌싸움에서 살해당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잊어버렸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일까?
가슴이 찢어질것 같이 아프다.
이건 실제 이야기니까 ~~
같은 해 7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인간과 타협하지 않았던 엔샬라는 우리를 탈출하여 난생처음,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왕과 왕비는 종족을 보존하지 못했다. 그 무리의 어떤 것과도 달랐던 두 존재는 영원히 왕과 왕비로 하나의 존재로 삶을 끝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살아남는다는 거~ 생존한다는 것은 치열한 전투와도 같다.
허먼과 엔샬라의 삶을 보면서 내 삶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전쟁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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