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들은 나비가 불을 향해 몰려드는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해왔지만 아직은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때로 여자가 스스로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규명을 했던가. 혹은 규명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던가. 나비에 대해서는 노력을 하면서도 말이다. 규가 말한 나비의 날개와 복사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비의 비밀은 체온이 뜨거운 동안만 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자의 비밀도….--- p.114
'저 남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미용사의 남편이 되는 꿈을 꾸어요. 마을의 미용사를 짝사랑하기 때문이오. 넌 자라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미용사의 남편이 될 거라고 대답했다가 따귀를 맞기도 하지. 마을의 미용사는 의문의 살해를 당해 어린 남자의 추억 속에 영영 묻히고 말아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남자는 드디어 어여쁜 미용사를 만나 오랜 꿈을 이루어요. 남자는 하루 종일 온 인생을 미용사 아내가 일하는 이발소 안에서 보내게 되지. 하는 일이라곤 머리 자르기 두려워 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아랍 춤을 추거나 신문의 낱말 맞추기를 하거나, 아니면 온종일 일하는 아내의 모습만 얼이 빠져서 바라보는 거요. 그리고 해가 지면 재빠르게 문을 닫아 걸고 둘이 사랑을 나누어요. 둘은 너무나, 그러니까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게 돼요. 조금의 방심이나 상처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병적으로. 사랑이 너무 깊어지자 미용사의 아내는 그 사랑이 식을까 봐, 그리고 사랑이 식은 뒤의 일이 너무 두려워서 안절부절 못하게 돼요.
그래서 사랑이 가장 깊은 그 순간에 죽기로 결심하지. 어느 폭풍우 치는 날 미용사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고 밖으로 달려나가요. 옆가게에 가서 클립인지 마요네즌지를 사오겠다면서 달려나가 파도가 치솟는 방파제에서 몸을 던지는 거요. 남자는 계속해서여자를 기다려요. 저 남자의 마지막 대사는 이런 거요. '앉아서 기다리세요. 미용사가 곧 올 거요' 남자는 미쳐 버리고 말아 .....
사랑이란 저런 거지. 바로 저런 거요. 인간은 사랑의 긴장을 오래 견디지 못해요. 사랑이 스스로 지나가지 않아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끈을 놓거나 아니면 자살이라도 해야 하는 거요'--- p.144
'집에 갔더니 네가 사라지고 없었어. 내가 바랐던 대로. 분명히 바랐던 대로 된 일이었는데 비어 있었던 먼지 앉은 빈집에 들어서니까 몹시 당혹스러웠어. 이번엔 너를 찾아 나섰어.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날짜가 흘러갈수록 이 모든 것이 기정 사실로 굳어질 테니까 다급했어. 원래대로 해놓고 싶었어. 이상했어. 집 안에 물건들은 그대로 있는데도 네가 없으니까..... 칼로 목을 배는 듯이 섬뜩했어. 네가 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나가버린 것처럼.......
논리도 서지 않고 판단도 서지 않았어. 그래서 무턱대로 너를 쫓았어. 용서할 수 없는데 왜 너를 쫓았는지..... 너를 찾아 다니는 동안 어느 날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아무일 도 없었던 것처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다시 음식 냄새와 수의 목소리와 동동거리는 발소리와 너의 냄새들로 집을 채울 수만 있다면.... 효경은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고 일어섰다.
'하지만 오늘 알았어. 너를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겐 이제 집이 없어. 우린 집을 가질 수가 없어. 우리가 날려버린거야. 아주 값싸게..... 하필이면 내가 너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때에. 너와 수를 위해서 모든 좋은 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때에, 가족을 위해 내 전체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기 시작했을 그 때에......'--- 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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